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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성주 인물, 백농 최규동 선생

일제 강점기 민족교육의 선각자, 서울대학교 초대 총장 최규동 선생 재조명

기사입력 2017-08-01 오후 1:59:4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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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농 최규동(白儂 崔奎東:1882~1950) 선생의 본관은 영천(永川, 27세손)으로 화약발명가 최무선 장군의 후손 영한(永漢)의 9남매 중 셋째 아들로 가천면 창천동에서 태어났다.

 

▲  백농 최규동 선생

 

엄격한 가정교육으로 일찍이 한학을 배운 백농은 8세에 석류나무를 보고 한시를 짓고, 10세에 이미 사서백가를 외우는 등 주위에서 신동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15~16세 때 그간 배워온 한학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백농은 신문학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상경, 광신상업학교(廣信商業學校)를 거쳐 정리사(精理舍) 수학연구과를 졸업했다.

 

▲  생가(가천면 창천리 소재)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는 애국계몽을 통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고, 도산 안창호의 대성학교(大成學校)에서도 교편을 잡았으며, 1910년 국권침탈 이후에는 교사로 있으면서 민족정신과 구국애족정신을 고취하는데 힘썼다.

 

1909년 휘문·기호·융희·중앙·오성·기명학교 등에서 후세교육에 전념했고, 1918년 5월 중동학교를 설립 교장으로 취임했으며, 1919년 2월 우리나라 최초의 중등학교 수학신교과서를 지어 수리교육의 새로운 기원을 마련했다.

 

▲  백농 신도비(성주 애지리 문화농원)

 

1949년 1월 초대 국립 서울대학교 총장에 취임해 우리나라 최초, 최대의 국립종합대학교로서 지도자급 인재 배출을 위한 영재교육 전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기반을 닦았으며, 조선전기공업중학교를 설립, 과학기술교육에도 공헌했다.

 

신·구지식을 탐구하기에 부단히 정진한 백농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곧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달아 나라의 광복과 민족의 발전은 오직 과학교육에 있다고 생각해 그의 생애 전반은 나라를 잃지 않으려고 싸웠고, 후반은 나라를 도로 찾으려고 싸웠으며 입교(立敎)·구국(救國)·제민(濟民) 정신이 중심 사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  백농 선생 묘원(가천면 광봉산 소재)

 

서울대학교에 수학과를 창설한 백농은 수학의 거두라하여 붙여진 별명이 바로 ‘최대수’이다.

 

일제 때 종로 종각 근처 길거리에서는 저녁때가 되면 항상 ‘길거리 수학 수업’이 시작되는데, 백농 선생이 양손에 분필을 들고 칠판에 판서하는 모습은 감탄 그 자체여서 두고두고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  白雲亭(금수면 봉두리 소재)

 

그 당시에는 신식 교육이 보급되긴 했어도 여전히 읽지도 쓰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셈을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수학은 특수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보급이 되었다.

 

이처럼 백성들이 수학에는 무관심했고, 수학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기에 백농 선생은 길거리에서 “콩 두 되반과 좁쌀 한 되반을 더하면 얼마입니까?”라고 쉽게 수학을 가까이 하면서 배울 수 있도록 교육 재건사업에 매진했다.

 

▲  白世閣(초전면 고산리 소재)

 

최규동 선생은 평생을 청빈하게 살았고, 육영을 삶의 즐거움으로 삼으며, 단 하나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민족교육의 선두에 선 자랑스러운 성주인이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백농 최규동 선생을 제대로 알고 있는 주민들은 그리 많지 않아 가천면 창천리 그의 생가 복원이 시급하지만 영천최씨 문중이나 행정관서의 관심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

 

▲  백농마라톤대회(중앙에 김항곤 성주군수)

 

2016년 5월 5일 중동고등학교 총동창회가 주최하고 백농중동마라톤동호회가 주관하는 중동학교 개교 110주년 기념 백농 최규동 선생을 기리는 국토종단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가천면 백농 선생 생가에서 기념식을 갖고 두 명의 선수가 출발해 다음 도착지에서 바톤을 인계하는 이어달리기 릴레이 마라톤으로 중동학교까지 385km를 5박 6일 동안 교대로 뛰는 행사다.

 

▲  축사를 전하는 성주군의 곽길영 전.의장

 

이날 행사에 김항곤 성주군수를 비롯해 곽길영 군의회 의장, 주재범 가천면장 등이 참석했고, 영천최씨 종친회에서는 최종관 성주군청 총무과장이 참석했다.

 

*  가운데 김항곤 군수

 

김항곤 군수는 축사를 통해 "서울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하셨고, 대수학자이신 향토출신 백농 최규동 선생의 생가에서 '백농마라톤대회'를 갖게 되어 감회가 남다르다"며 "그 어른의 명성에 걸맞게 생가 복원을 비롯해 성역화 사업에 모두가 관심을 가질 때"라고 말했다.

 

이날 곽길영 의장은 축사를 통해 “대 교육자이신 백농 최규동 선생 같은 어른이 향토 출신이라는 것이 무한한 자랑꺼리”라며 “그 명성, 위상에 걸맞은 생가 성역화 사업을 했어야 마땅하지만, 생가가 초라하기 그지없어 부끄럽다”고 말했다.

 

▲  성주군의회 곽길영 전.의장

 

곽 의장은 “저의 힘이 미약해 매년 그 어른의 묘소를 찾는 것으로 작은 일부터 하고 있다”며 “생가 복원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으나 예산 문제로 지연되고 있음이 안타깝다”라고 했다.

 

곽길영 의장은 “이러한 성역화 사업은 최씨 문중이나 어느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지방자치단체, 영천최씨 대종회, 중동중고등학교 총동창회 등 모두가 관심 가지고 나설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  백농 선생 생가

 

이날 마라톤 출발에 앞서 백농 선생 묘소에서 중동학교 총동창회원을 비롯해 백농중동마라톤동호회 회원 등 200여명의 뜻있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안전기원제를 올렸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에 납치되어 1950년 10월 6일 평양감옥에서 옥사했는데, 당시 69세였다. 1968년 2월 20일 대한민국 정부에서 문화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독립유공자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최종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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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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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세
    2019-10-13 오전 3:13:31
    최규동 선생 초대 서울대학교 총장 중동학교 설립 교장역임 독립운동가 국민훈장 수훈 그의자손 최문곤씨 조상을 섬기고 홍보하고 빛내는데 정말 자랑스럽네요
  • 최문곤
    2017-08-01 오후 3:40:14
    백농 최규동 선조의 일생과 그 업적을 소상히 소개해 주심에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후손으로써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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